문득 길을 걷다가 심심해서 주변의 풍경을 기억하며 가보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떤 방법으로 기억하시나요?
예를 들어 제 왼쪽으로 나무가 5그루, 오른쪽으로 4그루, 우측 나무 2그루 사이마다 전봇대가
하나씩 배치되어 있고, 그 옆쪽으론 큰 도로가 있습니다. 왼쪽 나무 옆으론 잔디가 심어져
있습니다. 제 기억의 결과물은 이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상하게 느낀 건 제 기억의 방법이었습니다.
보통은 사진을 찍듯이 풍경을 머릿 속에 집어넣고 그 풍경을 떠올리며 저렇게 결과물을 적어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반대(?)라고 해야하나, 풍경을 보고 각 이미지의 주요 물체들을
언어로 뽑아내고(나무, 전봇대, 잔디, 도로) 다시 언어를 사용해(오른쪽, 왼쪽, 1.5m)라는 단어로 물체를
배치하더군요. 그러다보니 의식하지 않은, 의식 밖의 것들에 대해선 기억이 안 나는 겁니다.
나무가 어떤 종류인지, 제가 걸었던 길이 어떤 모양의 블럭으로 포장되어 있었으며 색상은 어떠했는지.
이미지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재가공한 뒤에 그걸 기억하려고 하니 되려 더 버거운 것 같고요.
다른 분들은 어떠신가요? 전 심지어 오늘 하루 계획이라던가 더 나아가 간단한 감정들까지 모조리 언어로
변환해서 그걸 재차 인식하려 하고 있더군요. 예를 들어 "철수는 새빨갛게 익은 사과를 입을 크게 열어 맛있게
한 입 베어물었습니다. 그러자 입 속에 산뜻한 사과향과 시원한 단맛이 퍼져나갔습니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보통은 그 광경을 자연스레 머릿 속에 떠올리며 하나의 상황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는 머릿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억제하면서 그걸 그냥 단어로써 인식하려고 노력하고 있더군요. 아마 어릴 때 공부
습관이 원인인 것 같기도 한데.. 공부하는게 싫어서 글 안에 있는 상황이나 원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객관식이나 단답형 문제로 출제할 수 있을만한 것들만 문장으로 추려서 시험전날 암기했습니다.
공식만 외우면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이과로 진로를 택하기도 했고요. 언어가 있고 그 다음 사고가 있다는
말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면 저같은 분들도 상당히 많을 거라 생각하는데 다른 분들은 어떤 사고
방법을 하고 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