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뱀2022.06.10 03:21
Koshu님 이야기 공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 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저도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때때로 나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경험과 지식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종종 들지만 그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고 이득이 있을까 싶을 때가 많아요. 그런데 이런 댓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삶의 형태도 환경도 병증도 다르기 때문에 제가 지금 하는 이야기가 딱히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몇가지 말해 볼게요.

- 말씀 하신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보낸 시간이 참 많아요. 수년 간 매일 죽음을 생각한 적도 있고, 몇 달 씩 집 밖에 나가지 못한 적도 여러번 있고, 절망감과 분노에 사로잡혀 보낸 시간도 많아요. 길게, 그리고 자주 반복 되었고요. Koshu님도 그런 시간을 겪으셨을 수도, 앞으로 겪게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저는 ‘괜찮을 거예요. 다 잘 될 거예요!’라는 말은 하지 못하겠어요. 저 스스로도 앞으로도 괜찮지 않은 시간을 빈도수 높게 계속 겪으며 살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얘기하고 싶은 건 이제 저는 ‘하- 뭐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 저는 저의 질환을 치료하고 싸워서 물리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coping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살아요. 제가 선택해서 지능이 높거나 낮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 듯이 조울증과 높은 수준의 불안을 느끼는 뇌를 가지고 태어난 것도 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그냥 나에겐 이런 condition이 있구나, 그럼 이런 상황에서 나는 내 하루를, 인생을 어떻게 ‘잘’ 지내볼까 고민하며 삽니다.
- 그러기 위해서 상당히 중요한 건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거예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 사회에 대한 죄책감.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텐데, 더 자랑스런 사람이 될 수 있었을텐데, 이런 생각 하지 않으셔야 해요.
- 왜냐하면, 세상은 생각보다 더 내 맘대로 살아도 되는 곳이고, 우리에게 요구되는 많은 목표들은 ‘달리 사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스스로 덜 불안하기 위해 만들어둔 것들이거든요. 19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해도 괜찮고, 25살에 번듯한 직장인이 되어있지 않아도 괜찮아요. ‘사회가 정한 기준’에 나를 비추어 스스로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확인하지 마세요.
- 오히려 개인적인 욕구와 목표들을 가지고 계시다면 (예를 들어 지금 소원이라고 말씀하시는 것들이요) 그 목표를 향해 페이스 조절을 잘 하시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근접해가는게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당장에 무언가 이루는 시기를 놓칠까 전전긍긍하지 않고요. 조울증 환자에게는 휴식과 에너지 관리가 중요하니까요. 쉴 땐 쉬고, 치료와 회복에 집중할 땐 그렇게 하고요.
- 약이 꼭 필요한 시기들이 있어요. 적극적으로 증상을 보며 조율할 시기도, 잠시 한 약에 정착해서 꾸준히 먹을 시기도요. 뇌가 우울에 절여지면 해마가 쪼그라들고 기억력 감퇴가 옵니다. 그럴 때 그 밸런스를 정상으로 돌려주는 건 오히려 약을 잘 먹는 행위에요. 조증/경조증에서 겪는 과민한 신경, 고조감 등을 적절한 레벨로 줄여주는 것도 약물. 신경전달물질, 호르몬의 밸런스를 잡아주는게 약물의 역할이고 그게 우리 뇌에도 일상에도 더 ‘괜찮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방법이기 때문에 약물치료는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 Koshu님도 더 어리고 아프지 않았던 시절 즐거운 기억들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살다 보면 종종 그와 비슷한 즐거운 시간을 또 겪게 되어요. 마음이 힘들 때에는 그 기억이 다시 흐릿해지고, 그 즐거운 감정이 진짜였나 의심스러워지곤 하지만 또 시간이 흐르면 그런 괜찮은 시간들이 반복 되더랍니다. 행복감, 즐거움의 감정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수가 중요하다고 하더라구요. 그럴 수 있는 시기에는 그런 기억들을 자주 만드시길 바래요.
- 저는, 스스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한 편으로는 삶을 상당히 사랑하는 것 같아요. 빡치게. 이런 양가감정을 수도 없이 겪게 됩니다. 삶에 대해서도, 스스로에 대해서도,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요. 그 양가감정을 끌어안는 것에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 스스로에 대해 뭐든 포용하는게 결과적으로 더 좋았어요. 진짜 나는 누구일까,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인걸까, 내 정확한 감정은 뭘까, 내 ‘정상 상태’는 뭘까, 이게 아니라요. 아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나구나. 이런 행동을 하는 나, 의외로 저런 생각을 하는 나, 이런 상황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기도 하는 나.
- 사회생활은, 완벽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결코. 때에 따라 필요한 페르소나를 만들어 하고 있습니다. ‘조금 괴짜 같은 구석이 있어’라는 평가를 듣는 곳도 있고 ‘제가 사회성이 조금 부족해요 이해 좀 ㅋㅋ’ 이런 컨셉을 잡는 곳도 있고, 딱 꼰대가 요구하는 ‘자네 이시대의 훌륭한 젊은이군’ 역할을 연기하고 빠져나오는 자리도 있습니다. 사회를 하나의 게임판으로 보고 정서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요.. 각각의 사회가 나의 전부가 되면 안 됩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는 ‘나 자신’과의 관계예요. 불필요하게 타인에게 몰입하거나 에너지를 쏟지 않고 항상 한 걸음 물러서 숨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을 잘 만드는 편입니다. 물론 그로 인해 커리어나 퍼포먼스에 어느정도 희생이 생기죠. 필요한 타협입니다. 저에겐 그런것 보다 (이왕 하기로 한) 제 생존이 더 중요하거든요.

좀 두서없이 써서 미안해요. 스스로에 대해 많은 숙고를 하시는 분일 거라고 생각해서 본인에게 맞는 힌트를 찾아내실 거란 생각에 일단 구구절절이 읊게 되었어요. 19살 되게 젊은 나이에요. 어리다는 것이 아니라, 앞에 시간이 많다구요. 지금까지의 시간이든 능력치든 성과든 뭐든 잃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잃었으면 채우고, 더 흥미가 가는 것이 있다면 이전 것은 버리고 그곳으로 가도, 앞으로 다르게 살아볼 시간은 충분합니다.

하나 더 말씀 드리면, 저는 이런 저를 완전히 포용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했어요. 때문에 매일 불행한 제가 또 매일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Koshu님은 일찍 겪기 시작한 만큼 또 일찍 스스로에게 맞는 coping skill들을 탑재해서 저보다 더 자주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조울증은 일찍 치료를 시작할 수록 완전관해가 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지금은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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